미국 서부 자동차 여행을 떠나는 이들에게 대륙횡단의 낭만을 상징하는 '루트 66(Route 66)'은 영원한 로망이다. 산타모니카(Santa Monica) 해변에서 시작해 시카고(Chicago)까지 이어지는 이 길은 미국의 첫 대륙횡단 ...
미국 서부 자동차 여행을 떠나는 이들에게 대륙횡단의 낭만을 상징하는 '루트 66(Route 66)'은 영원한 로망이다. 산타모니카(Santa Monica) 해변에서 시작해 시카고(Chicago)까지 이어지는 이 길은 미국의 첫 대륙횡단 도로이다.
광활한 대지를 달리다 보면 대도시의 화려함과는 또 다른, 시간이 멈춘 듯한 미국의 시골 감성을 간직한 작은 마을들을 지나치게 된다.
그중에서도 캘리포니아(California) 주와 애리조나(Arizona) 주의 경계에서 서부 특유의 매력을 뿜어내는 작은 도시가 있다. 바로 모하비 사막(Mojave Desert) 한가운데 자리 잡은 니들스(Needles)이다. 뜨거운 열기와 황량함 속에 숨겨진 이 이색적인 도시를 직접 둘러본 생생한 경험과 유용한 여행 정보를 공유하고자 한다.
콜로라도 강을 품은 모하비 사막의 뜨거운 도시, 니들스(Needles)
캘리포니아 주와 애리조나 주의 경계를 흐르는 콜로라도 강(Colorado River)을 지나면 거대한 모하비 사막의 초입에 위치한 니들스(Needles)와 만나게 된다. 이곳은 미국 서부의 악명 높은 데스밸리(Death Valley)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미국 전역에서 가장 뜨거운 지역 중 한 곳으로 꼽히는 곳이다.
실제로 한여름에는 낮 기온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솟기 때문에,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여름철에 잠시 차를 세우고 쉬어가는 것조차 엄두를 내기 힘든 곳으로 알려져 있다. 다행히 내가 방문했을 때는 머리가 타들어 갈 듯한 때는 아니었기에, 40번 프리웨이(Interstate 40)를 타고 달리던 중 니들스 다운타운 방향으로 핸들을 틀었다.
차 문을 열고 내리자마자 사막의 건조한 공기와 함께 눈앞에 펼쳐진 사막 시골 거리 풍경은 마치 오래전 미국 영화에서 봤던 서부마을 그 자체다. '니들스'라는 독특한 이름은 이 지역 인근 산맥에 바늘처럼 뾰족하게 솟아오른 산봉우리들의 모양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멀리 보이는 산세가 과연 이름값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카스(Cars)'의 현실판, 광장에서 만난 클래식카 축제
니들스의 중심부에 위치한 작은 광장에 들어섰을 때, 생각지도 못한 행운을 마주했다. 마을 주민들이 모여 오래된 앤틱카와 클래식카들을 전시하는 이색적인 축제가 한창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반짝반짝하게 광을 낸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은 마치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카스(Cars)'의 한 장면을 그대로 현실로 옮겨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전설적인 루트 66 도로 위의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시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자동차들이 마을의 빈티지한 분위기와 완벽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흥미로웠던 점은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이 귀한 올드카들의 주인이 대부분 인근에 거주하는 백인 할아버지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은퇴 후 자신의 소중한 취미 생활로 오래된 자동차를 직접 관리하고 꾸며서 이렇게 광장에 나와 서로의 차를 자랑하는 그들의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이 무척 인상 깊게 다가왔다.
멈춰버린 철도 역사와 루트 66(Route 66)의 흔적을 걷다
클래식카들이 전시된 작은 광장 한편에는 과거 이 도시가 번성했던 이유를 증명하는 앰트랙(Amtrak) 기차역이 자리하고 있었다. 니들스는 본래 미국의 거대한 대륙 철도를 건설하던 시절, 선로를 깔던 철도 인부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기차 마을이었다.
철도가 개통된 이후 유동 인구가 늘어났고, 뒤이어 미국의 첫 대륙횡단 도로인 루트 66까지 이 마을을 관통하게 되면서 니들스는 급격한 번성기를 맞이했었다.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에서 출발해 시카고(Chicago)까지 달리는 전설적인 철도 노선인 사우스웨스트 치프(Southwest Chief)가 여전히 이 니들스 역에 정차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신기했다. 한때는 수많은 여행자와 물자로 북적였을 이 길이, 현재는 인구가 5,000명도 채 되지 않는 조용한 시골 마을로 변모했다는 점에서 묘한 쓸쓸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철도의 발달과 쇠퇴, 그리고 고속도로의 등장으로 서서히 잊혀가는 미국 서부 마을의 전형적인 궤적을 고스란히 밟아온 역사의 현장이었다.
니들스 리저널 뮤지엄(Needles Regional Museum)에서 발견한 특별한 빈티지 콜라병의 비밀
마을의 더 깊은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어 기차역 인근에 위치한 '니들스 리저널 뮤지엄을 찾았다. 규모 자체는 대도시의 박물관에 비하면 소박하고 어설픈 감이 있었지만, 내부에 진열된 전시품들은 하나같이 니들스의 진한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이곳을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운영 시간을 반드시 미리 체크해야 한다. 목요일부터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정오(12pm)까지만 아주 짧게 문을 열며, 일요일부터 수요일은 휴관이다. 특히 사막의 열기가 가장 극심한 여름철(6월 중순부터 9월 초순까지)에는 아예 박물관 전체가 휴관에 들어가므로 헛걸음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박물관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던 중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1923년 니들스 고등학교의 첫 풋볼팀 사진과 지금의 세련된 장비와는 비교할 수 없이 엉성한 옛 유니폼들이었다. 그리고 한편에 전시된 오래된 코카콜라(Coca-Cola) 병들도 눈길을 끌었다. 알고 보니 1916년 초, 미국 전역에 단 6개밖에 없던 코카콜라병 제조 공장 중 하나가 바로 이곳 니들스에 있었다고 한다. 당시 이 공장에서 생산된 콜라병 바닥에는 생산 지역을 증명하는 'CALIF. NEEDLES'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데, 이 병들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 세계 수집가들 사이에서 고가에 거래되는 희귀한 빈티지 아이템이라는 설명을 듣고 나니 유심히 다시 보게 되었다.
박물관을 메운 1924년대의 개인 수표(Check) 원본이나 1950년대의 달력 디자인들을 살펴보면서, 미국이라는 나라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본질적인 삶의 형태를 참 잘 보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을 메운 1924년대의 개인 수표(Check) 원본이나 1950년대의 달력 디자인들을 살펴보면서, 미국이라는 나라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본질적인 삶의 형태를 참 잘 보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세기 전 이곳을 지나갔을 수많은 로드트립 여행자들이 구글맵이나 GPS도 없던 시절에 두꺼운 지도책을 펼쳐 들고 사막을 건너며 느꼈을 설렘과 두려움이 시공간을 초월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한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화려한 관광지는 아니지만, 루트 66의 옛 발자취를 따라가며 날 것 그대로의 미국 서부 역사를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던 니들스 여행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