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가볼만한곳 봉평 재래시장 400년 전통의 메밀꽃 필 무렵 배경지 방문기


미국 엘에이에 살다 보니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반드시 가야 할 곳들을 핸드폰 속 리스트에 하나둘씩 채워 넣게 된다. 그 수많은 버킷리스트 중에서도 항상 최상단에 위치하는 곳이 바로 한국 특유의 정취가 살아있는 재래시장 투어이다. 

마침 강원도 평창 여행 일정이 잡히자마자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목적지는 봉평 재래시장이었다. 더욱 운이 좋았던 것은 평창 여행의 날이 마침 봉평 5일장이 열리는 장날과 정확히 겹쳤다는 사실이다. 
타국 생활 속에서 늘 그리워했던 한국 전통 장터의 활기찬 에너지를 직접 느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푼 마음을 안고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봉평장날


400년 역사와 소설 속 배경을 간직한 봉평 재래시장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 위치한 봉평 재래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상업 공간을 넘어 깊은 역사와 문학적 정취를 품고 있는 특별한 장소이다. 

이곳 봉평장은 조선시대부터 시작되어 무려 4백 년이 넘는 유구한 전통과 역사를 고스란히 이어오고 있다. 역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한국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 이효석의 문학관이 인근에 있어 문학 기행의 명소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단편소설인 <메밀꽃 필 무렵>의 주요 무대이자 배경이 바로 이 봉평장이기 때문에 소설 속 장돌뱅이들이 걷던 길을 상상하며 시장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매월 끝자리가 2일과 7일인 날(2일, 7일, 12일, 17일, 22일, 27일)마다 열리는 봉평 5일장은 장날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관광객들과 상인들로 활기가 넘쳐난다.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계절에 장날까지 겹치면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대목을 이룬다. 

여행 마지막 날 아침 일찍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마치고 시장에 도착했을 때도 이미 수많은 부지런한 상인들이 가판대를 정성스럽게 펼쳐놓고 손님 맞을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전통시장의 아침을 깨우는 상인들의 활력 넘치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무쇠솥뚜껑에서 지져내는 고소한 메밀 먹거리와 강원도 별미

봉평 재래시장의 가장 큰 매력은 이 지역의 대표 특산물인 메밀을 활용한 다채롭고 신선한 먹거리들을 끊임없이 맛볼 수 있다는 점이다. 
시장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코끝을 강렬하게 자극하는 고소한 기름 냄새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발길이 멈춰 섰다. 엎어놓은 커다란 무쇠솥뚜껑 위에서 얇게 펴 바른 메밀 반죽에 속을 채워 지져내는 메밀전병과 고소함이 일품인 메밀부침, 그리고 팥소 등으로 속이 꽉 찬 수수부꾸미의 비주얼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기름이 자글자글 끓는 무쇠 솥뚜껑 위에서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는 부침의 향연은 미국(USA)에서 오랜 기간 거주하며 정통 한국 음식을 그리워했던 나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강원도의 또 다른 대표 작물인 감자를 즉석에서 갈아서 노릇하게 구워내는 감자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별미 중의 별미였다. 엘에이(LA)에도 웬만한 한국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즐비하지만, 이처럼 탁 트인 야외 재래시장에서 할머니들의 투박하면서도 정겨운 손맛으로 즉석에서 부쳐주는 메밀 요리의 신선함과 깊은 풍미는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다.

쫀득한 강원도 찰옥수수와 정겨운 시골 장터 풍경

미국에도 마트마다 옥수수가 흔하게 널려 있지만, 강원도 재래시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유의 쫀득쫀득하고 찰진 식감의 찰옥수수는 타국에서 절대 맛보기 어려운 귀한 음식이다. 미국 옥수수는 대부분 단맛은 강하지만 퍼석퍼석한 식감 때문에 평소에 거의 사 먹지 않았었다. 

반면 커다란 들솥에 소금을 살짝 가미한 물을 붓고 오랜 시간 푹푹 삶아낸 강원도 찰옥수수는 씹을 때마다 입안에 착착 감기는 찰진 맛이 일품이다. 방문했을 당시가 마침 옥수수 시즌의 끝물이라는 상인의 말에 아쉬운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타이밍에라도 신선한 고향의 맛을 볼 수 있어 무척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한 보따리 가득 구입해서 미국으로 전부 가져가고 싶었을 정도로 그 맛이 훌륭했다. 

대형 마트나 현대식 쇼핑몰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전통시장만의 구수한 입담과 흥정 문화도 무척 매력적이었다. 물건을 하나 사더라도 구수한 목소리로 너스레를 떠는 시장 아저씨의 유쾌한 입담 덕분에 지갑을 열면서도 전혀 아깝지 않고 오히려 웃음이 빵 터지기도 했다. 

장터 한쪽에는 정겨운 추억을 소환하는 온갖 시골 물건들이 주인을 기다리며 투박하게 진열되어 있었고, 김장철을 앞두고 밭에서 갓 수확해 나온 싱싱한 총각무와 채소들이 가득 쌓여 있어 시골 장터 특유의 계절감을 온전히 선사했다.


전통적인 재래시장임에도 불구하고 매대마다 원산지 표시판이 정확하고 깔끔하게 표기되어 있어 방문객 입장에서 깊은 신뢰감을 느낄 수 있었다. 
가마솥에서 신선하게 볶아내고 있는 땅콩의 고소한 향에 이끌려 한 줌 사 먹으며 해외로 곧 돌아가야 하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보았다. 
비행기 수하물 규정 때문에 수많은 시골 먹거리와 커다란 꿀 상자를 다 사 갈 수 없다는 현실에 자꾸 머리를 굴리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욕심을 내려놓고 한국에 머무는 동안만이라도 이 정겨운 분위기를 있는 그대로 마음껏 즐기자고 부푸는 마음을 차분히 다독였다. 화려하고 값비싼 물건을 산다 한들 그 물질적인 만족감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겠는가. 

타국으로 돌아가면 또다시 치열한 일상이 시작되겠지만,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소중한 친구와 손을 잡고 봉평 장날의 활기찬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며 함께 나누었던 맛있는 음식과 정겨운 대화의 기억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소중한 영혼의 재산이 될 것이다. 돈으로는 결코 살 수 없는 따뜻하고 정겨운 추억을 양손 가득 잔뜩 움켜쥔 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한국 재래시장 여행의 행복한 마무리를 지었다.

함께 보면 좋은 글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