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오래 살다가 한국을 여행하면 전통적인 한국의 모습만큼 흥미로운 것이 있다. 오랜 세월 외국 문화가 들어와 한국식으로 변해버린 장소를 만나는 일이다. 평택 송탄에서 그런 곳을 만났다. 수도권 전철 1호선 송탄역에서 내려 평택국제중앙시장으로 걸어갔...
해외에 오래 살다가 한국을 여행하면 전통적인 한국의 모습만큼 흥미로운 것이 있다. 오랜 세월 외국 문화가 들어와 한국식으로 변해버린 장소를 만나는 일이다.
평택 송탄에서 그런 곳을 만났다.
수도권 전철 1호선 송탄역에서 내려 평택국제중앙시장으로 걸어갔다. 서울의 전통시장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가까워질수록 분위기가 달라졌다. 영어 간판이 눈에 들어오고 햄버거 가게와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점이 이어졌다.
해외여행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한국에서 이런 거리를 만나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다.
하지만 미국에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보면 이곳의 매력은 단순히 ‘미국 같은 거리’라는 데 있지 않다. 미국에서 시작된 문화와 한국의 생활문화가 수십 년 동안 섞이면서 송탄이라는 도시만의 모습으로 변해왔다는 점이 더 흥미롭다.
한국여행에서 경복궁이나 한옥마을과는 조금 다른 한국을 보고 싶다면 한번 걸어볼 만한 곳이다.
미군기지와 함께 만들어진 송탄의 국제시장
평택국제중앙시장을 이해하려면 먼저 송탄과 미군기지의 관계를 알아두면 좋다.평택시 자료에 따르면 1952년 K-55 미공군기지가 들어선 이후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송탄국제중앙시장을 비롯한 상권이 형성되었다. 이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상점과 음식점이 늘어나면서 지금과 같은 독특한 시장으로 발전했다.
현재 이 일대는 송탄관광특구에 포함된다. 송탄관광특구는 1997년 지정됐으며 K-55 미군기지를 중심으로 성장한 신장동 일대에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쇼핑·음식점 등이 밀집해 있다.
이런 배경을 알고 거리를 걸으니 영어 간판이 많은 이유도 자연스럽게 이해됐다.
한국의 전통시장이면서 외국인 고객을 상대로 성장한 상권이고, 오랜 시간 한국인과 외국인이 함께 생활하면서 만들어진 거리인 것이다.
해외에 살다가 한국을 찾는 사람에게는 이 부분이 오히려 재미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한국적인 모습이 한옥이나 고궁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외국 문화가 들어와 한국 사회 안에서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를 보는 것 역시 현대 한국을 이해하는 여행이 될 수 있다.
송탄역에서 걸어서 만나는 또 다른 한국
내가 이곳을 둘러본 방법은 자동차가 아니라 전철과 도보였다.수도권 전철 1호선을 타고 송탄역에서 내려 국제중앙시장 방향으로 걸었다. 지방 소도시 여행은 자동차가 없으면 어렵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송탄은 전철을 이용해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편했다. 송탄역은 현재 수도권 전철 1호선이 정차하는 역이다.
역에서 시장 쪽으로 걸어가면서부터 평범한 한국의 거리와 조금씩 다른 풍경이 나타난다.
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일반적인 재래시장에서 보는 모습과는 분위기가 또 달라진다. 영어 간판과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상점, 음식점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경기관광공사 역시 이곳을 다국적 음식문화를 만날 수 있는 장소로 소개하고 있다. 터키·태국·베트남 등의 음식점과 함께 의류, 밀리터리 소품 등을 판매하는 가게들도 볼 수 있다고 안내한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목적지를 하나 정해놓고 찾아가기보다 골목을 천천히 걸어보는 편이 더 재미있었다.
오래된 가게와 새로운 상점이 한 거리에 섞여 있고, 한국어와 영어가 함께 보인다. 전형적인 관광지를 구경한다기보다 실제 사람들이 생활하는 동네를 들여다보는 느낌에 가깝다.
미국에서 왔다면 송탄 햄버거가 더 재미있는 이유
평택국제중앙시장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이 있지만 송탄을 이야기하면서 빼놓기 어려운 음식이 햄버거와 부대찌개이다.미국에서 한국을 여행하는 사람에게 미국식 햄버거 자체는 특별하지 않다.
그런데 송탄 햄버거는 이야기가 다르다.
미군기지를 중심으로 서구의 식재료와 음식문화가 들어오고 그것이 한국인의 입맛과 만나면서 송탄만의 음식문화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경기관광공사는 송탄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송탄부대찌개와 송탄햄버거를 소개한다. 송탄햄버거 역시 일반적인 미국 프랜차이즈 햄버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리 잡은 지역 음식이다.
미국에서 먹던 햄버거와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외국 음식이 한국에 들어오면 원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기도 하지만 한국인의 입맛과 식문화에 맞춰 새로운 음식으로 바뀌기도 한다. 송탄은 그런 변화를 한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미국 음식이 있으니 가본다’기보다 ‘미국 음식이 한국에서 어떻게 달라졌을까’를 찾아보는 편이 훨씬 재미있다.
맛집 하나보다 골목을 걸어봐야 하는 시장
평택국제중앙시장을 맛집 하나만 정해 찾아갔다가 바로 돌아오기에는 조금 아깝다.이곳의 진짜 특징은 특정 가게보다 거리 전체에 있기 때문이다.
K-55 미군기지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오래된 상권, 영어와 한국어가 섞인 간판,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점, 오래된 상점과 새로운 카페가 한데 모여 있다.
시장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채소와 생선, 반찬을 사는 전통시장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경기관광공사가 이곳을 ‘경기도의 이태원’이라고 소개한 이유도 이런 다문화적인 거리 풍경 때문이다.
다만 나는 굳이 이태원과 비교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송탄에는 송탄만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미군기지와 함께 형성된 상권이 수십 년의 시간을 지나면서 하나의 지역문화가 되었고, 그 흔적이 지금도 거리와 음식에 남아 있다. 그 배경을 알고 걸어보는 것이 이곳을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해외에서 한국여행 간다면 이런 소도시도 재미있다
해외에 살다 한국을 찾으면 짧은 일정 때문에 서울, 부산, 제주처럼 잘 알려진 여행지를 먼저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한국을 여러 번 여행했다면 이런 소도시의 한 동네를 걸어보는 것도 좋다.
특히 송탄국제중앙시장은 전철을 이용해 접근할 수 있어 자동차가 없는 여행에서도 고려해볼 수 있다. 송탄역에서 출발해 시장과 주변 거리를 걸어보고, 송탄을 대표하는 음식 하나를 골라 먹어보는 정도로 일정을 잡으면 된다.
무엇보다 미국에서 한국을 찾은 나에게 이곳은 ‘한국에서 만나는 미국’이라기보다 ‘미국 문화가 들어와 오랜 시간 한국과 섞인 모습’을 보는 장소에 가까웠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기지와 함께 성장한 도시, 그 주변에서 만들어진 시장, 한국식으로 변한 햄버거와 부대찌개, 지금도 한국어와 영어가 함께 보이는 거리까지.
고궁이나 한옥마을에서 만나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해외에서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하거나 이미 유명 관광지를 여러 번 가본 사람이라면 이런 곳도 여행 목록에 넣어볼 만하다. 평택국제중앙시장은 화려한 관광명소라기보다 한국 현대사의 한 부분이 지금의 일상 속에 어떻게 남아 있는지를 걸으며 볼 수 있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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